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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도록

    대흥이씨 조형물 및 유래문

    조형물번호 61
    작품명 생명의 씨앗
    조각가 최영근
    본관
    성씨
    종친회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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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유례

    ▸작품설명

    생명의 근원이 되는 씨앗을 상징하며 문중의 탄생 번영을 담아 인류발전에 빛이 되리라는 염원을 담았다.


    ▸ 대흥이씨 유래

    대흥군(大興君) 이연계(李連桂)는 전주 이씨 22세에서 분관한 대흥이씨(大興李氏)의 시조이다.  대흥군은 고려말기에 예문관제학(藝文館提學: 정3품)과 명나라 관직으로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냈다.  대흥군은 태조 이성계와 재종간 임에도 불구하고 불사이군의 절의를 굽히지 않고 끝까지 조선 개국을 반대하였다. 결국 간신들의 참소를 받아 양양(襄陽: 경북 예천군)으로 귀양을 갔다. 높은 절의를 가상히 여긴 태종(1403년)은 귀양살이를 풀어주면서 대흥군으로 봉하였지만 봉군을 마다하고 대흥땅(現: 충남 예산군 대흥면)을 떠나 다인고현(現: 경북 의성군 다인면)으로 물러나가 살았다. 대흥군은 고려를 구하지 못한 망국지신을 자처하며 학식과 재덕을 스스로 감추어 갈포베옷만 입고 지내다가 1407년에 일생을 마쳤다.  자손에게 유언하기를 "내 자손은 반드시 대흥(大興)으로 관향(貫鄕)을 삼을 것이며, 내가 죽은 후에는 지문(誌文)과 묘갈(墓碣)을 쓰지 말라"고 하였으니 그 유지(遺志)는 곧 고려를 구하지 못한 죄인의 글은 내세울 것이 못된다는 절의정신을 일깨워 준 것이다.  대흥군의 부인은 개성왕씨 삼중대광 도첨의(三重大匡 都僉議) 영(泳)의 따님이며 삼형제를 두었다. 큰아들 손귀(孫貴)는 고려조에서 용주부사(龍州府使)를 역임하였으나 조선 건국후에는 부친의 뜻을 받들어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그 후손은 경북의성 부사공파(府使公派)와 황해도 평산 청헌공파(淸軒公派)이다. 둘째 아들 손정(孫禎)의 후손은 평북 박천 초산의 송재공파(松齋公派)이고 셋째아들 좌찬성(左贊成) 손현(孫賢)의 후손은 전남 담양과 경기도 강화의 충숙공파(忠肅公派)이다. 시조의 묘소는 경북 의성군 다인면 송호리 다기산(多岐山)이며 음력 10월 13일에 향사를 올린다. 무인년 새봄을 맞아 시조의 정의로운 충절과 고귀한 유덕을 계승 발전하고자 자손들이 정성을 한데모아 이 기념비를 건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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