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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평길씨 조형물 및 유래문

    조형물번호 35
    작품명
    조각가 길홍랑
    본관 해평
    성씨 길씨
    종친회연락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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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유례

    ▸ 작품설명

    고구려 대에 정착한 팔학사(八學士)의 역사성과 길씨 가문의 상징인 가문(家紋) 가헌(家憲) 종규(宗規) 가범(家範) 가훈(家訓)의 뜻과 고려충신 야은 길재(吉再)선생의 불사이군(不事二君) 충의정신(忠義精神) 삼은(三 隱)과 도학(道學) 사림파(士林派)의 비조(鼻祖)로써 백세청풍(百世淸風) 지주중류(砥柱中流) 비의 선비정신 민족정기의 등불로서 후세 영원불멸의 사표를 상징함.


    ▸ 해평길씨 유래

    멀리 당나라에서 예문에 밝은 8학사가 초빙되어 오셨는데, 길씨의 먼 조상인 길당(吉塘)공은 그중 한분으로, 당나라에서 열경(列卿) 벼슬을 지내신 분으로서 경상도 선산 해평백(海平伯)을 제수 받으시고, 정당문학(政堂文學) 벼슬과 문정공(文貞公) 시호를 받아 본관을 임지 명에 연유 해평으로 삼게 되었다. 그후 사적이 소실되어 족보상 시조는 성균 생원이신 길시우(時遇)공이 되고, 그 증손자이신 야은(冶隱) 길재(吉再)선생이 중시조가 되어 항렬이 밝혀지고 있다. 야은은 고려말 선산에서 태어나서 학덕을 도야한 후 벼슬길에 나섰다. 나라의 운명이 기울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으로 부귀공명을 마다하고 고향 금오산에 돌아와 곧은 선비의 길을 걸으셨다. 원근(遠近)의 후학들이 그 학행을 흠모하여 모여드니 이후 사림파(士林派)의 형성을 보게 되고, 마침내 조선 도학의 적통(嫡統)을 이으신 사림의 비조로서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조광조와 같은 훌륭한 학자들로 하여금 도학의 학통을 확립하게 되었다. 선생의 충의(忠義)는 세종원년(1419) 67세로 돌아간 전후부터 크게 숭모 현창(顯彰)되었다. 바로 세종대왕은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등에 올려 신자(臣子)의 귀감을 삼았으며, 중종이후 포은과 함께 나라에서 묘지수호제사를 계속하고, 숙종 어필시(御筆詩)등 역대왕의 찬시와 각가지 자손 후대의 은전이 베풀어졌다. 이에 선생은 포은(鄭夢周) 목은(李穡)과 더불어 조선 유교사회의 전통적 삼은(三隱)으로 상징화되고 각처에 서원(書院)과 삼은각(三隱閣), 백세청풍(百世淸風)비・지주중류(砥柱中流)비 등이 세워져 영원한 정신적 지주로서 추앙되고 있다. 「고려 5백년 교화와 조선조 억만년 강상(綱常)의 근본이 한 몸에 터 잡힌」 야은선생의 유학사상 위상은 참으로 높고 컸다.  후손들은 선조님들의 높은 기상을 이어받아 어떠한 권력이나 재물을 탐하지 말며, 오직 외로움으로 선조님들의 은덕에 보답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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