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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작품 설명
종친의 새로운 도약과 끝없는 발전을 염원
가문의 힘찬 기상과 종중의 화합
기하학적인 현대적 기법(개념미술. Conceptart)으로 조형화함
▸문중 유래
삭녕최씨(朔寧崔氏)의 시조는 고려 중엽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를 지낸 최천노(崔天老)이시다.
공의 선계는 삼한(三韓)의 구족(?族)이라고 영상을 지낸 최흥원공의 친필 기록을 남겼으나 여러 전란에 문헌이 실전되어 고증할 수 없다.
중시조인 최유가(崔瑜價:고려사에 瑜價)공은 고려 명종 20년(1190년)에 국자감대사성과 추밀원부사에 이어 명종 24년(1194년)에 참지정사에서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시고 노년에 삭녕에서 여생을 보내시어 이로 인하여 삭녕최씨의 본관이 유래된것이다.
그러나 평장사 양공은 원조로서 중간세계가 부전하여 최선보(崔善甫) 친어모군낭장(親御侮軍郎將)과 최연(崔?) 함경전부사양공이 각기 1세조로하여 낭장공파(郎將公派)와 부사공파(副使公派)로 세계를 이어왔다.
시조 때부터 대대로 세거해온 옛터는 경기도 삭녕에서 북방 40리에 위치한 마장면 대전리 괴음촌(塊陰村)에 임좌(壬坐)로 전해 왔으며, 괴음촌 옛터 앞에는 후손 문정공 최항(崔恒)이 평장사 양공을 숭모하기 위하여 흥화정이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다.
삭녕최씨의 후손중에는 세종조의 훈민정음 창제를 주관하고 영의정에 오른 태허정공 최항(崔恒)과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로 호종하고 구국제민의 충절과 청백리로 이름난 영의정을 지낸 송천공 최흥원(崔興源)과 진주로 낙향하여 촉석루를 중건한 대사 간공 최복린(崔卜麟)과 천체물리학의 선구자 혜강공 최한기(崔漢締)등이 우리 종문을 빛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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