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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작품 설명
광주안씨는 정충대절의 충신과 학문덕행의 학자와 공신을 배출한 문무겸비의 가문이다.
본 작품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교지 형태로서 선조께서 조정에 나아가 진충보국 하셨던 충정을 표현하였으며,
좌측에는 대나무, 우측에는 매화를 두어 선비 정신을 상징화 하였다.
▸문중 유래
조선 영조 15년, 서기 1739년 발간된 광주안씨세보(廣州安氏世譜, 己未大同譜)에 시조는 고려 태조 때의 안방걸(安邦傑)이며 경기 광주에서 읍인(邑人)이 반란을 일으키자 창의토평(倡義討平)한 공(功)으로 대장군(大將軍)이 되고 광주군(廣州君)에 봉(封)하여 광주(廣州)를 본관(本貫)으로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기 1170년경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 안유(安綏)가 안찰사(按察使)로 경남 함안(咸安)에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고 안이대촌(安李大村, 安仁村)에 정착하였다고 한다.
시조이하 13世의 묘(墓)는 소재를 알 수 없어 함안군 가야읍 선왕동 봉산재(蓬山齎)에 설단향사(設壇享祀)하고 시어사공이하 4代는 삼봉산록(三蓬山麓) 건좌(乾坐)에, 20世까지는 안령사(按嶺祠)에 모셔있다. 이부총랑(吏部摠郞) 안정(安禎)의 후손은 경남 김해에, 고려의 멸망으로 탁질종신(托疾終身)한 중랑장(中郞將) 안국주(安國柱)의 후손은 함안에, 조선 태조 때 최초로 청백리에 녹선(錄選)된 사간공(思簡公) 안성(安省)의 후손은 광주에, 전농시판사(轉農寺判事) 안몽득(安夢得)의 후손은 조선 태종 때 의령(宜寧)에, 상호군(上護軍) 안충(安?)의 후손은 고려가 망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으로 종신(終身)하고 천안에 자리를 잡았으며, 위위주부(衛尉主簿) 안창(安昌)의 후손은 조선 단종 계유정란(癸酉靖란亂) 직후 밀양으로 이거(移居) 하였으니 이들은 여섯 파의 중시조(中始祖)이다. 후손들은 평소 학문을 연마하고 국난(國亂)때는 출정하여 나라를 지켰으며, 학자와 공신(功臣)들의 유적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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