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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도록

    인천채씨 조형물 및 유래문

    조형물번호 210
    작품명 번영(繁榮)의 창
    조각가 구광민
    본관 인천
    성씨 채(蔡)
    종친회연락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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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유례

    ▸ 작품 설명 

    “蔡”의 상징인 거북을 표상화하여 후손들에게 번성과 번영의 미래를 기원함.

    주 조형물인 곡선의 원형은 선대와 후대의 사랑과 화합을 상징함.

    상단의 “蔡”자를 떠 받치는 작품형태는 인천채씨 문중의 4파를 표상하여 대대손손 영광의 미래상을 상징함.


    ▸문중 유래

    우리나라 蔡氏의 득성에 관하여는 전래되는 문헌이 부족하여 정확한 고증이 불가능하나 중국 하남성에 건국한 蔡國이 수백 년간 흥망성쇠를 거듭하다가 기원전 477년 주변국의 침공으로 멸망한 후 蔡氏들이 여러 국가로 진출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는 설과 춘추시대 때 기자를 따라 우리나라에 온 채림으로부터 시작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다 기록하지 못하고 근년에 이르러서는 우리나라의 蔡氏들은 물론이고 주변 국가에 거주하는 蔡氏들 모두가 한국의 蔡氏는 중국 하남성에 뿌리를 둔 蔡氏 라고 굳게 믿고 있다.


    시조공 휘 선무는 고려조의 贈同知事로, 어떤 파보에는 同知樞密院事라 하였고 仁川에서 정착, 세거 하였으므로 후손들이 仁川을 관향으로 하게 되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 시조 先茂의 손자인 휘 寶文은 高麗 毅宗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은청광록대부를 거쳐 보문각 대제학을 역임하였고 금성백(錦城伯)에 봉해졌다. 또한 시조의 10세손 휘 貴河 號 多義堂 시호 貞義는 圃隱 정선생과 어려서부터 도의를 강마하고 교양을 위한 학문을 독실하게 닦았다. 고려의 운명이 끝나고 조선이 개국되자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킨 고려의 유신 두문동 72현의 한 분으로 공은 통곡하며 글을 써서 아들을 경계하여 가로대 나라가 무너지고 인군이 망하였으니 내가 어찌 돌아가겠는가. 맏아들 泳 군자소감은 고향에 돌아가서 삼가 조상의 제사를 받들도록 하라. 둘째 아들 浮 세마는 서도 지금의 평양에 가서 부모와 스승의 남긴 가르침을 따르라. 東陽의 (子) 昇 참의 넷째 明陽 수사는 내 뒤를 따르라 하여 목단산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그후 후손이 번성하여 대구를 근거하여 전국에 산재하여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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