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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성이씨 조형물 및 유래문

    조형물번호 198
    작품명 동방의 기상
    조각가 이상필
    본관 진성
    성씨 이(李)
    종친회연락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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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유례

    ▸작품 설명 

    본 작품은 사대부 양반의 선비상을 상징하는 정자관의 형상을 표현한 것으로, 진성이씨(眞城李氏) 문중의 기개와 번영,학자 퇴계 이황 선생의 사상 철학을 암시하며, 진성이씨의 기념비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사대부 가문의 화려한 모자가 아닌 일상생활 속에 착용하는 정자관의 형태로 도안을 삼아 진성이씨의 청렴한 성품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정자관은 단층에서 삼층까지 있는데 지위가 높을수록 층이 높은 것을 착용하였는데, 진성이씨(眞城李氏)의 성씨조형물은 삼층 정자관을 두어 문중의 강건함과 위상을 상징화하였다.


    ▸문중 유래

    시조 석(碩)은 경상도 진보현(眞寶縣,현 청송군 진보면)에서 세거하였다. 2세 자수(子脩)가 고려 말 공민왕 때 홍건적을 토벌한 공으로 안사공신 송안군(松安君)으로 봉군되었다. 송안군이 왜구를 피하여 풍산현 마애로 거처를 옮기고 아들 운구(云具)와 운후(云侯)를 얻었다. 참의공 운구는 양공(養蔬), 양검(養儉), 양호(養浩)를 낳았다.


    부정공 운후의 아들 정(禎)은 선산도호부사를 역임한 후 호조참판에 증직되고, 아들 우양(遇陽),홍양(興陽),계양(繼陽)이 현달하였다. 


    노송정 진성군 계양의 첫째 아들 찬성공 식(埴)의 아들 6형제 중 넷째 아들 온계 해(瀣)는 대사헌을 역임했고, 예서로 필명을 떨쳤으며, 여섯째 아들 퇴계 황(滉)은 조선 성리학의 종장이 되었다. 퇴계는 일생동안 경(敬)의 자세로 진리를 밝히고 실천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임종 때는 국장(國葬)을 사양하고 묘갈 앞에는 ‘퇴도만은진성이공지묘(退陶晩隱眞城李公之墓)'라고만 새기게 하였으며, 그 후 진보라고 칭하던 본관을 진성으로도 쓰게 되었다. 


    노송정의 둘째 아들 송재 우(?)는 호조참판을 역임하고 청해군에 봉해진다. 이후 안동과 예안은 유교문화의 본고장이 되었으며, 후손 가운데 완(完),안도(安道),형남(亨南),영도(詠道),정회(庭檜),정백(庭栢),명익(溟瀷),동표(東標),종수(宗洙) 등의 학덕을 겸비한 학자가 배출되고, 국난 때는 애국지사가 줄을 이었다. 


    일제침략기에는 만도(晩燾),중린(中麟),찬화(燦和),중언(中彦),인화(仁和),긍연(兢淵),명우(命羽),동하(東廈) 등이 충절과 의병장으로 명성을 떨쳤으며, 육사(陸史) 원록(源祿)은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으로 조국 광복의 의지와 신념을 불태웠다. 


    진성이씨 가문은 많은 선비와 우국지사들을 배출하여 나라와 역사에 미친 영향이 아주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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