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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설명
본 작품은 위의 작은 반원에 문중의 현재와 자손을, 아래의 큰 반원에 진주류씨의 뿌리와 선조를 담아 하나의 원이 되어 화합된 류씨 문중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위 중앙은 진주류씨의 종장으로 버들가지가 밑뿌리에서 양화공파, 총량공파로 분파, 태극은 무궁한 발전을 상징한다.
일가간의 화목과 나라를 섬기고 자손을 보전하여 민족과 사회를 빛내고 효도를 중시하는 문중의 염원과 번영,발전을 담고 있다.
▸ 문중 유래
우리 진주류씨의 시조(始祖)는 고려 중엽 금자광록대부 중서령 좌우위(左右衛) 상장군(上將軍)을 지내신 진강부원군(晉康府院君) 류정(柳挺)으로, 고려 60년 무신(武臣)정권을 수립한 진강후(晉康侯) 최충헌(崔忠獻)의 외조부임이 최충헌의 묘지명으로 실증되었다. 우리는 시조 이래 고려와 조선에 걸쳐 동방의 벌족(閥族)으로 고관대작이 대를 이어 청사(靑史)에 빛나고 있으니, 비록 번족하지는 못하나 원훈공신(元勳功臣)이 17분에 증시(贈諡)11분이요, 원종공신(願從功臣)19분이시다.
문형(文衡)은 오직 서경공(西?공) 근(根) 한 분 뿐이로되, 문과 장원급제 6분에 급제자는 51분이요, 재신(宰臣)만도 12분에 음사(蔭仕)를 포함해 실직당상관(實?堂上官)이 80여분이시다. 무과급제는 123분에 장신(將臣)이 100여 분이시다. 비록 대유배출(大儒輩出)은 없었으나, 자손의 영화가 조종(祖宗)의 덕업(德業)을 옳게 잇고 옳게 펴나감에 있으니, 내 한 몸 잘하고 못함이 조선(祖先)의 영욕(榮辱)에 미침을 명심하여, 일가간의 화목함을 다지면서 위로 조선(祖先)을 섬기고 아래로 자손을 보전하여 정륜(正倫)을 밝히고 강상(綱常)을 바로 세워나가면 이것이 바로 민족과 사회를 빛내고 부모를 드러내는 효도도 될 것이니, 이에 이뜻을 다지고 되새기며 여기 뿌리공원에 우리도 동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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