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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기진씨 조형물 및 유래문

    조형물번호 114
    작 품 명 우거진 나락(벼)
    조 각 가 박철찬
    본관 풍기
    성씨 진씨
    종친회연락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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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유례

    ▸ 작품설명

    본 작품은 굳은 절개와 풍요롭고 알찬 풍기 진(秦)씨의 역사를 바탕으로 하여 예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우거진 나락(벼)을  상징으로 선조들의 혼을 담아 후세에 충효(忠孝)와 독실(篤實)의 긍지가 자손만대에 번영(繁榮)하라는 염원(念願)을 담은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 풍기진씨 유래

    “시조는 필자명자(弼子明子)이다.” 중국 당나라 고종 무덕 7 갑신년(624) 오주(吳州)에서 태어나셨다. 어릴 적부터 용기와 지혜를 갖추어 의지가 남달리 뛰어난 성품을 가지셨으며 조정에 나가 벼슬을 하게 됨에 병부시랑(兵部侍郞 군사령부 참모)이 되시었다.


    서기660년 신라(新羅)와 당(唐)나라 연(련)합군이 편성되어 특별명령으로 대사마 대장군(大司馬 大將軍)에 임명되어 소정방 총대장군과 같이 신라로 건너와 라당연(련)합군에 참가 신라 장군 김유신과 더불어 13만 대군을 이끌고 백제 정벌에 참전 백제를 패망시키니 신라 30대 문무왕(661~681)이 큰 잔치를 베풀어 주면서 “태원백”(太原伯 도지사급)으로 특별히 봉하여지고 서기 668년 고구려 패주(浿州)땅의 평양성이 함락되고 난 뒤 류경(柳京 지금의 평양)에 다달아서 보니 대동강을 끼고 있는 도읍 경치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성격이 유순하며 “시”와 “풍류”가 뛰어난 문화인들을 보고 감탄하며 “그 옛날 기자(箕子)가 거느리고 온 5천이 넘는 사람들 틈에 나 또한 한 몫을 더하고저 함이라”하며 마음을 굳게 다지고 기자묘(箕子廟)를 참배한뒤(주:귀화절차를 밟음) 이 땅에 삶을 이룩하니 오늘의 “진씨(秦氏)” 시조가 된 것이다. 


    시조로부터 15세 손자 “질명(礩溟)”이 서기 1187정미(고려 19대 명종 17)년 조원정란이 일어나 이를 평정하는데 공을 세우니 “기주부원군”(基州府院君 지금의 풍기)에 봉하여졌다. 이때부터 후손들은 “관향”을 “기주”(풍기)로 정하고 “풍기 진씨”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시조로부터 18세 손 “중길” “중기” “중백(계백)” 3형제분으로 맏형인 “중길”은 고려말기의 학자로서 “통직랑(정 5품)”인 판도정랑 계림판관(鷄林判官)에 올랐으나 그만두고 후진 양성에 힘을 쏟은 분으로 영풍군 봉현면 노(로)좌리 “노(로)계서원(魯溪書院)”에 모셔져 있으며, “선계랑공파, 순천공파, 산음공파, 감사공파, 감정공파, 제학공파의 줄기 흐름을 이루고 있고, 중형인 “중기”는 전서공파로서 대원파, 삼척파, 남원파의 줄기를 이루고 끝인 “중백(계백)”은 제주도로 건너가셔서 후손들 장파인 판포(板浦)파, 중파인 명월(明月)파, 말파인 납읍(納邑)파를 이루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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