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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XT광산탁씨 조형물 및 유래문
본문
▸작품 설명
고구려 장수인 대중상 시조와 해동성국 발해국 고황제 대조영의 역사성을 사선과 직선의 주 조형물로 표현하여 선조의 기백을 표상하였다. “太”를 원형에 새김으로써 협계·영순파의 결속력과 화합을 의미하였다.
▸문중 유래
태 太씨는 해동성국 발해 渤海를 건국한 고황제 대조영 大祚榮 후손이다.
시조는 고구려 高句麗 장수인 대중상 大仲像이며 아들 대조영이 서기 698년 발해를 건국한 이래 15대에 걸쳐 229년간 융성하였으나 거란의 침입으로 서기 926년 국운이 다하여 공현황태자 光鉉皇太子가 발해 유민을 이끌고 고려 高麗로 넘어오니 태조 왕건 太祖 王建이 크게 예우하여 원보벼슬과 함께 황해도 백주 (현재지명: 황해남도 배천군) 땅에 정착해 조상의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서기 1231년(고종 高宗 18년) 태집성 太集成 장군이 몽고군을 격퇴한 큰 공을 세워 협계군 陜溪君에 봉 封 해진 수사공 집성대장군과 서기 1259년 (고종 46년) 태금취 太金就 장군이 몽고군을 격퇴한 큰 공으로 영순군 永順君에 봉 封해진 금취대장군을 각각 중시조로 모시던 협계. 영순 후손들이 2010년 족보를 통합하고 광현황태자가 고려에 정착해 제사를 모셨던 백주를 새로운 본관으로 삼았다.
태씨가 된 연유는 고려사에 대 大와 태 太가 혼용, 기록되고 동사통감에 발해 고황이 태조영 太祚榮으로 기록되어 있는 등 大와 太는 같은 의미로 사용 된 데서 유래 되었으며 씨족 중 일부는 현재에도 大씨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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