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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작품의 전체 형태는 교하노씨 명 대가의 역사를 바탕으로 안정된 비례와 적당한 묘사생략을 통해 조형화한 작품이다. 세 개의 손 형태는 문중의 화합을 뜻하고 가운데의 원은 강한 생명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후세의 번영을 염원한다는 뜻을 형상화 시킨 작품이다.
▸ 교하노씨 유래
교하노씨(交河盧氏)의 본관인 교하(交河)는 경기도 파주시에 속한 교하읍이다. 신라 때 교하군이었는데 파주시로 통합되었고 한강과 임진강이 합류하는 곳을 따라 교하(交河)라 일컬어 왔다.
당나라 한림학사 노수(盧穗)의 차남, 한림학사 노오(盧塢)가 8학사의 한 분으로 통일신라에 오자 국빈(國賓)의 예로 경기도 교하백에 봉작하여 교하노씨가 발원했다. 노강필(盧康弼)은 태조왕건과 동년배로 개국공신이며 태자태사의 작위(爵位)를 받았으며, 개성 신흥사 공신당(功臣堂)에 삼한공신 54인을 도화하여 모신 공신 중 한 분으로 고려대전에 개국공신으로 위패를 봉안했다.
수대에 이르러 고려조 증 문하시중 노영수(盧穎秀) 의열공(懿烈公)의 아들인 첨의정승 노척이 아들 4형제를 두었으니 노제(盧濟)는 서원군(瑞原君 : 서원:파주), 노진(盧稹)은 창성군(昌城君 : 공양왕 왕비 순비의 부친), 노은(盧訔)은 경원군(慶原君), 노영(盧渶)은 신양군(新陽君)에 봉군받아 4파를 이루고 있다.
문하시중 노영순의 후손인 노지유(盧智儒)는 4군파와 같은 시대에 홍건적의 난에 무공을 세워 신창군(新昌君 : 아산시 신창읍)에 봉군, 분관하여 후손들이 신창노씨(新昌盧氏)로 계승하고 있다.
조선조에서 우의정 노한(盧閈) 공숙공(恭肅公), 영의정 노사신(盧思愼) 문광공(文匡公), 알성문과 장원급제 노직(盧稙) 등 충효열사의 인물을 배출했으며, 청주의 체화서원(棣華書院)에 체화당 4위와 서암공을 배향, 창원의 첨두서원(瞻斗書院)에 학자 충신을 배향했다. 현대에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 노태우(盧泰愚)를 비롯하여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각계에서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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