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REVIOUS교하노씨 조형물 및 유래문
- NEXT고성남씨 조형물 및 유래문
본문
▸ 작품설명
명문석을 두손으로 받들고 있는 두덩어리의 형상을 노(盧씨)의 "노"자와 결합하여 구성하고 아홉 마리의 용을 조각하여 문중의 상징성을 기념비적인 형태로 표현 하였다
▸ 노씨 유래
노씨는 중국의 제(齊)나라때 벼슬이 정경(正卿)이고 시호(諡號)가 경중(敬仲) 이신 휘혜(諱徯)께서 큰 공훈을 세워, 지금은 산동성 장청현(山東省 長淸縣)인 노현(盧縣)을 채읍받아 그 지명을 취하여 성(姓)을 노씨라 칭하였다.
노씨는 제대(齊代)로부터 당대(唐代)에 까지 많은 역사의 명인을 배출하였고, 인류역사를 위해 거대한 공헌을 했으며, 당(唐)나라 때는 여덟 재상이 배출되었는데, 그 중 한분이신 휘 승경(諱 承慶)의 손자 중 서주자사(徐州刺史) 휘 홍표(諱 鴻表)의 손자이며, 연주자사 휘 진순(諱 震順)의 아들인 한림학사(翰林學士)겸 상호군(上護軍) 휘 수(諱 穗)께서 아들 아홉 형제를 거느리고 당선종말(唐宣宗末)에 국정이 문란하여 난이 일어날 조짐이 보이므로 동래(東來)하니 바로 노씨의 시조(始祖)이시다. 신라 헌안왕(憲安王)때이며, 처음 평안도 정주(定州) 능리촌(菱里村), 다음은 용강(龍岡) 쌍제촌(雙悌村)에 옮겨 사셨다. 신라말 왕의 부름을 받아 외우내환(外憂內患)을 평정하는데 큰 공훈을 세워 신라왕은 이를 숭앙하여 구형제에게 각각 봉백(封伯)하니 구관(九貫)이 되었으며, 각 파의 기세조(起世祖)와 빛나는 현조(賢祖)는 각 파보(派譜)에 명기되어있다.
노씨가 뿌리 내린지 어언 1천1백여 년 근심지영(根深枝榮)이라, 일월성신(日月星辰)과 같이 빛나는 현신달사(賢臣達士), 청백리(淸白吏)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건국후에는 민선대통령·국무총리·정치경제계·교육예술계·법조군경계· 종교계 등 각계 각층에서 국가·사회에 공헌하고 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