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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이 작품은 불꽃과 족자로 조형되었다. 불꽃은 마의태자의 구국정신을 표상하고 족자는 후손들의 사적을 상징한다. 이 두 조형을 통하여 구국을 염원했던 마의태자의 정신과 고단한 시련 속에서도 연면히 이어 온 한성씨의 가통을 만날 수 있다.
▸ 통천김씨 유래
고려 우왕 6, 서기 1380년에 기록된 중랑장공외가호구입안(中郞將公外家戶口立案)을 근거로 1701년에 발간된 통천김씨족보 초간본에 통천김씨의 시조는 마의태자(麻衣太子)의 아들 통천군 교(較)로 기록된다.
묘는 강원도 통천군 통천읍 동봉곡(洞鳳谷)에 모셔 있고, 사당은 통천군 통천읍 감당면(甘棠面) 내동(內洞)에 모셔 있다. 후손들은 강원도 통천 일대에 세거하면서 이청(以淸)은 시중, 위(渭)는 정승에 올랐다고 기록되지만, 역사적 시련으로 선계(先系)를 정확히 고증 할 수 없어 고려말 광정대부(匡靖大夫) 판도판서(版圖判書) 문한학사(文翰學士) 원등(遠登)을 중시조로 모셔 계대한다. 중시조 이후 3세손 진산교도(珍山敎導) 여산(如山)의 후손을 진산공파, 군수(郡守) 중령(仲齡)의 후손을 군수공파, 전직(殿直) 중복(仲福)의 후손을 전직공파로 분파하여 오늘에 이른다.
조선시대에는 후손들이 관직을 따라 강원도 통천에서 전라도 완산(完山)으로 이주한 후 전직공파 9세손 빙(憑)이 기축옥사(己丑獄事)에 무고로 연루된 뒤 후손들이 흩어지고,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군수공파의 많은 젊은이들이 의병으로 출정하여 전몰하였다. 유적은 강원도 통천 일대와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두현리, 전북 전주시 안덕원, 전북 완주군 소양면 이림리, 충남 서천군 비인면 관리, 충남 서천군 판교면 문곡리, 충남 보령시 남포면 옥동리 등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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