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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작품 설명
개성김씨는 과거 현대문명이 형성하기까지 개성김씨 문중은 지역에서의 역할과 위상이 한반도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아가고 있음을 표현하였다. 하대 1, 2단 사각은 문중의 뿌리깊은 역사를 상징하고, 작품의 본체 중심부 원형의 형상은 세상을 바르게 개혁하고자 하는 큰 의지를 보여 줌으로써 개성김씨 문중의 번창과 번영을 상징한다.
중앙의 책의 형태는 문중의 위엄과 학자, 선비, 사대부 가문을 상징한다. 또한, 상단의 빛의 문양은 문중에 비젼과 미래로의 도약을 나타내고 산과 태양의 형상으로, 미래에 대한 문중의 위엄과 선조들의 기상과 기개를 나타내고자 했다.
▸문중 유래
개성김씨의 중시조는 고려 충의공 김용주(忠毅公 金龍珠)공이시다.
용주공은 신라56대 경순대왕의 10세손이다. 경순왕의 다섯째 아드님이시자 태조왕건의 외손인 의성군 김석공은 의성김씨의 관시조가 되시고, 2세 일 3세 흥술 4세 국 5세 경진 6세 언미 7세 습광 8세 공우는 9세 용비 용필 용주 삼형제를 두셨다.
장남 용비공과 차남 용필공은 의성김씨이며, 삼남 용주공은 개성김씨의 중시조이시다. 용주공은 약관의 나이로 과거(문과)에 급제하시어 4대 왕에 걸쳐 수차례 여진족을 정벌한 공으로 충공신에 추대되셨다. 이어 개성군에 봉해지시고 정2품 평장사와 개성부사를 역임하셨다.
시호는 충의공이고 배우자는 무송유씨이며 묘소는 개성의 용수산에 있다고 하나 실전되었다. 후손들이 용주공의 이 같은 큰 공적을 기리면서 의성김씨에서 분적하여 개성김씨로 하고, 그 중시조로 모시게 되었다. 후손들은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고자 설단하여, 1970년 3월부터 전북 군산시 나포면 옥곤리 산94번지에서 매년 3월 17일(음)에, 1980년 4월부터 충북 영동군 용산면 부릉리 산4-1번지에서 매년 10월 10일(음)에, 2009년 5월부터 대전광역시 대덕구 갈전동 산68번지에서는 매년 10월 첫째 주일(음)에 시제를 모시고 있다. 우리 개성김씨의 무궁한 영광과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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