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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
문중 개개인의 희망이 전체와 화합되어 우주를 향해 영원히 번영한다는 상징으로 큰 원과 그 안에 개개인을 의미하는 작은 원을 모아서 공강을 구성하였다.
▸문중 유래
신라 경순왕의 아들 석錫이 시조로서 고려 광종때 광평시랑廣評侍郞을 역임하고 의성군義城郡에 봉해지니 자손들이 위성을 관향으로 삼았다. 의성의 옛 이름이 문소聞韶였기에 문소김씨라고도 하였다.
시조로부터 8세世인 공우公瑀에 이르러 장자인 용비龍庇가 태자첨사를 지내고 의성 오토산에 모셔져 있으며 차자 용필龍弼이 수사공, 삼자 용주龍珠는 개성부사를 지냈다. 대개 이 9세를 각파의 중시조로 받들어 왔으며, 20세를 기준으로 무려 280여파에 150여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왔다. 현재 종친이 30만 명에 이르고 있다.
고려와 조선 전기의 현조顯祖로는 찬성사 영, 평장사 춘, 찬성사 성단, 맹암 영렬, 자사윤 태권, 남파 광부, 전서 거두, 퇴암 거익, 석포 로, 문절 용초, 괴정 숙검, 월촌 남보, 후계 한계, 도곡 한경, 오봉 제민, 사우당 관석, 청계 진 6부자, 칠봉 희삼 5부자 등이 있다.
모재 안국, 사재 정국 형제는 기묘명현으로 숭앙을 받고 있으며, 퇴계의 정맥을 이은 학봉 성일은 임란 때 경상 좌?우도관찰사?초유사로 순국하였고, 동강 우옹은 남명의 수제자로 나라의 위기를 감당하였다. 이와 같이 조선조의 학자 명신이 기라성같이 많고, 임란창의순절공신도 응봉 치중, 백암 응택, 구오 득기 등 20여명에 이른다.
일제강점기에는 만주벌 독립투쟁의 호랑이가 된 일송 동산이 있고, 파리장서와 군자금 모금 등 전국 유림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성균관대학을 설립한 심산 창숙이 있다. 그 외 대한민국장 등 훈?포장을 받은 독립운동유공자도 90여명이나 된다.
이처럼 의성김문은 국난 때에는 기꺼이 순국의렬의 길을 걸었고 일천여년 역사를 거쳐 국가융성과 학문발전의 중심에 섰다. 우리는 이 빛나는 선조들의 충효 학덕 대의 실현의 선비정신을 추원追遠하고 계승하여 다음세대의 내일을 깨우쳐 나아가고자 이 빗돌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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