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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설명
명씨 후손들이 시조의 보살핌 가운데 조화롭게 화합하고 서로 도우면서 무한히 발전하고 번영해 나감을 뜻한다.
▸문중 유래
명씨의 시조는 명옥진(明玉珍)황제이다. 명옥진은 1329년 지금의 중국 호북성 수주서 수현 유림진에서 태어났다. 명옥진은 원나라 말 도처에서 군웅이 할거하던 때에 백성들을 괴롭히던 원나라 무리들을 물리치고, 1361년 국왕의 자리에 올라서 송나라의 국호와 연호를 그대로 사용하다 1363년 중국 풍경에 대하(大夏)국을 건국하고 황제로 등극하였다. 그러나 명옥진 황제는 1366년 38세 때 애석하게도 세상을 떠났다. 당시 10세인 황태자 명승(明昇)이 황제를 계승하여 원나라릍 멸망케 한 명나라와 여러 차례 전쟁을 하다 1371년 백성이 도탄에 빠질 것을 염려하여 명나라 태조 주원장에게 나라를 내주었다. 주원장은 1372년(고려 공민왕 21년)명승 황제와 모후 팽씨를 고려로 보내면서 명씨를 군인으로도 삼지 말고 일반 백성으로도 삼지 말며(不做軍。不做民), 저택과 노비를 내리라는 서신을 공민왕에게 보냈다.
명옥진 황제의 황후 팽씨는 부덕(婦德)을 고루 갖추고 자수에 능하여 조선 태조 이성계의 용포 등 궁중관복을 지어 올렸고. 여인들의 예복인 당의(唐衣)와 족두리 수식(首飾)을 처음으로 보급하였다. 조선의 태조 이성계는 명승을 화촉군에 봉하고. 태종은 충훈세록을 내렸으며. 황후 팽씨의 묘를 숙릉(肅陵)이라 하여 국빈으로서 예를 다하였다. 명씨는 임진왜란 때 평택현령으로 조헌의 의병과 함께 금산에서 왜군과 격전하다가 전사한 명광계를 비롯하여 숙종 때 보령현감을 지낸 명정구 등을 배출했으며, 명제세, 명이항, 명의택, 명운행 등을 일제치하 독립운동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명씨들은 매년 시조릉인 중경 예릉과 호북성 수주시에 있는 탄생지기념관을 추모 방문하고 있으며, 한중교류 단체 등에 적극 참여하여 한중 간 우호증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명씨들은 호적 편제 때 본관을 연안, 서촉 등 여러 가지로 신고하였으나 모두 같은 단일 혈족이며, 28,000여 종친들이 황제 후손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으로 대동단결하고 있다.
● 중국 중경시 강북구에 있는 예릉은 1982년 직물공장 확장공사 중에 발견되어 중국 정부에서 명옥진 황제릉으로 조성하였다.
● 2010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대하국 황궁터는 현재 복원작업 진행 중이다.
● 호북성 수주시에 있는 탄생지기념관은 2012년 다시 세웠다.
● 명씨대종회 사당 경모사는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두포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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