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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작품 설명
본 작품은 부평이씨 문중이 하나 되는 모습과 두 손 모아 문중을 받들어 모신다는 기본 컨셉으로 작품을 구상하였음.
조형물의 위쪽 모아진 형상은 부평이씨 문중이 단결되고 화합되는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고, 좌우측으로 두 개의 형상은 받들어 모신다는 의미로 손의 모습이다.
가운데 파여진 것은 부평이씨가 뻗어나가는 모습을 조형적으로 표현했고, 자손들이 선친들을 존경하고 받들어 모시며, 효 사상을 느낄 수 있게 시각적으로 우러러 보이도록 하였음.
▸문중 유래
우리 부평이씨는 장제군에서 수주(樹州)를 거쳐 부평부로 개칭된 계양산 일대에 본거지를 두고 옛 수안, 동성, 통진, 김포 등 네 개의 현을 통치한 호족 군장이신 이희목(李希穆)을 시조로 모시고 있다. 태조 왕건의 고려왕조 창업에 적극 협조한 공으로 태조는 공을 고려개국벽상공신(高麗開國壁上功臣)에 책봉하고 삼중대광(三重大匡)으로 태사(太師)의 벼슬을 내렸다. 시호는 충민(忠敏)이시다.
시조 충민공의 증손인 문충공(文忠公) 휘 이정공(李靖恭)과 현손인 장숙공(莊肅公) 휘 이위(李瑋)께서 부자분이 이어서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내시고 현손인 휘 이숙(李璹)과 휘 이순(李珣) 두 형제분이 참지정사(參知政事)와 문하평장사(門下平章事)를 지내심으로써 고려시대 문벌귀족가문을 이루었다.
조선시대에서는 6조(六曹)의 판서를 두루 역임하시고 청백리에 녹선되셨으며 영의정에 추증되신 충숙공 휘 이세화(忠肅公 諱 李世華)를 비롯하여, 도승지와 대사헌을 지내시고 공조, 형조, 호조, 예서의 판서를 역임하신 효정공 휘 이정제(孝貞公 諱 李廷濟), 병조, 형조, 예조의 판서와 한성판윤을 지내신 충희공 휘 이익원(忠僖公 諱 李翼元) 등 문중을 더욱 빛나게 하신 선조들의 유업이 있어, 그 후손들이 문중의 종훈인 충효청겸(忠孝淸謙)의 정신을 대대로 면면히 계승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문충공께서 부평백(富平伯)에 봉해짐에 따라 후손들이 본관을 부평으로 삼았는데, 940년 지방제도를 개혁할 때 장제군(長堤郡)이 수주(樹州)로 승격되어 개경 근교의 웅읍(雄邑)이 되면서 우리 부평이씨가 고려 초에 수주이씨(樹州李氏)가 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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