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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상단의 원은 미래를 상징하는 태양이자 희망이며, 또한 시조 염형명(廉刑明)을 구심점으로 표현하였고 암석안의 형상은 중시조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시 충경공(忠敬公) 매헌(梅軒) 염제신(廉悌臣)과 세 아드님(국파공, 동정공, 청강공)의 빛나는 업적과 후손들의 무궁한 번영, 미래에 대한 희망의 결정체이다.
▸ 파주염씨 유래
파주염씨는 삼한공신(三韓功臣)이고 대사도(大司徒) 벼슬을 한 염형명이 시조이시고 관향은 파주이고 단일본이다. 고려국 개국공신인 휘(諱) 상(相)과 재상을 역임한 휘 현(顯)봉성태사까지 오르신 시(諡) 효문공(孝文公) 휘 신약(信若), 도첨의중찬(都僉議中贊)을 지내신 시충정공(忠靖公) 휘 승익(承益) 그리고 좌우정승과 문하시중을 지내신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시 충경공(忠敬公) 매헌 염제신은 중시조이고 명문거족으로 염문의 위상을 높이셨다.
공민왕이 친히 그린 충경공의 초상화는 보물1097호로 지정되어 국립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충경공의 세분 아드님은 국파공(菊坡公) 휘 국보(國寶)는 서성군(瑞城君)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 동정공(東亭公) 휘 흥방(興邦)은 서성군 성균관 대사성(大司成) 예문관 대제학 청강공(淸江公) 휘 정수(廷秀)도 사헌부(司憲府) 대사헌 우문관(右文館) 대제학으로 고려국에서 가문의 중흥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1392년 역성혁명(易姓革命)으로 조선국이 개국하자 염문의 후손들은 충신불사이군으로 은둔생활로 이어졌지만 임진왜란때 창의(倡義)하여 공을 세운 휘 걸(傑), 휘 서(瑞), 휘 홍립(弘立), 휘 말경(末卿), 휘 언상(彦祥)장군은 원종공신(原從功臣)에 책록되어 있고 한말(韓末)항일투쟁에 몸바친 휘 온동(溫東) 열사도 우리 염문의 후손이며 한국 사실주의 문단에 찬란한 금자탑을 쌓은 횡보(橫步) 휘 상섭(想涉)도 우리의 자랑이라고 하겠다. 이와 같이 선조님들의 역사적인 사실을 바로 알고 그 뜻을 후손들은 이어 살아가는 목표를 바르게 하고 의지를 굳게 하여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노력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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