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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문효공(文孝公) 손순(孫順)의 석종(石鐘)의 기적과 의암 손병희(孫秉熙)선생의 애국정신을 현대적으로 조형화하였다. 효의 상징인 석종을 바탕에 두고 태극으로 문중의 뿌리와 기상을 표현하였고, 용의 힘찬 위용과 횃불은 자손만대의 영원함과 번영을 상징하며, 조상의 충효정신을 우렁찬 종소리에 실어 만세에 울려퍼지는 기상을 나타내었다.
▸ 밀양손씨 유래
약 이천백년 전 진한(辰韓)땅에 육촌(六村)중 무산 대수촌장 구례마(茂山 大樹村長 俱禮馬)는 신라를 세운 원훈으로서 신라 삼대 유리왕 구년(서기 삼십이년)에 사성(賜姓)을 받으니 이분이 손씨(孫氏)의 원조(元祖)이시다. 법흥왕 이십 삼년에 충렬공(忠烈公)으로 시호를 받았고 무열왕 삼년에 문의왕(文義王)으로 추봉되었다. 삼십일세(世) 휘 순(諱順)은 석종(石鐘)의 기적이 있어 효(孝)로서 명성이 천추에 빛나 신라 흥덕왕 십년 을묘(서기 팔백삼십오년)에 월성군(月城君)으로 책봉되고 시호는 문효(文孝)이니 이분이 시조(始祖)로 다시 일세(世)가 된다. 문효공의 효행에 대하여는 삼국유사 고려사 효행록 조선조의 삼강록 여지승람 명심보감 효행편 등에 수록되어 있다. 후에 관향이 셋으로 나뉘었으니 밀양(密陽) 평해(平海) 경주(慶州)이다. 관향을 밀양(密陽)으로 한분은 칠세(世) 고려개국벽상공신(高麗開國壁上功臣) 삼중대광사도 광리군(三重大匡司徒 廣理君) 휘 긍훈(諱 兢訓)이며 시호는 무열이니 전국 각지에 널리 번창하여 살고 있는 밀양손씨(密陽孫氏)의 관조(貫祖)이시다. 삼십세(世) 휘 화숙(諱 和叔)은 황강도 역승(黃江道 驛丞)이니 이태조 육년 정축(서기 일천삼백구십칠년)에 밀양에서 공주군(公州郡) 유등천면(柳等川面)으로 집을 옮겨 사시니 지금의 대전광역시 서구 도마 변 내동이다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어 육백여년을 살아오고 있으며 역승공의 향사를 모시는 수정재(水晶齋)는 시 문화재 자료 제 삼십호이며 대전광역시 서구 변동에 위치해 있다. 사십사세(世) 의암(義庵) 휘 병희(諱 秉熙)는 서기 일천구백십구년 삼월 일일 민족대표 삼십삼인의 선봉(先鋒)으로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선포하여 자주독립국가임을 세계만방에 알리고 온 겨레의 잠자는 혼을 일깨워 만세운동을 일으켜 민족단결을 다지는 계기가 되게 하였다. 밀양손씨(密陽孫氏)는 충효(忠孝)와 청백(淸白)을 가문의 근본으로 삼아 열사(烈士)와 명경거유(名卿巨儒) 덕업문장(德業文章)과 충신효자(忠臣孝子)가 면면히 배출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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