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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설명
우리 주씨(周氏)는 주(周)나라 종실의 후예로서 주나라의 국명(國名)으로 성(姓)을 삼았다 당(唐)나라 말엽에 한림학사공(翰林學士公)휘황(諱璜)께서 오이(五李)의 난리에 동국(東國)으로 피난하여 정착(定着) 현재에 이르렀다. 둥근해는 시조(始祖) 학사공(學士公) 휘황(諱璜)을 뜻하며 받치고 있는 일자형(一字形)은 고려선종(高麗宣宗)때 황금탑(黃金塔)과 국청사(國淸寺)를 창건(創建) 금자광록대부예부상서(金紫光祿大夫禮部尙書)를 지낸 육(六)세 문경공(文敬公) 세후(世候)를, 상하 몸체는 아들 지(砥) 절의 형제를 좌대에 삼계단은 옥천(沃川) 증평(曾平) 목천(木川) 삼파(三派)를, 상단에 아홉개 조형물은 옥천 증평 목천 이원 신계 청양 삼척 청안 보은을 뜻한다. 한 시조(始祖)에서 출발하여 형제(兄弟) 삼파(三派) 구종중(九宗中)이 태양(太陽) 같은 시조(始祖)를 뫼시고 효제지심 소원지족 자손만대 길이번창(繁昌) 모범(模範) 인재(人材)가 많이 배출되어 종문(宗門)에 영광(榮光) 번영(繁榮)을 기원하는 표현(表現)이다.
▸ 초계주씨 유래
초계주씨(草溪周氏)는 조자황제헌원(肇自黃帝軒轅)으로 주씨왕실(周氏王室)에 예락문물과 전장법도(典章法度)를 융흥발전(隆興發展)하여 사해만방(四海萬邦)에 종주국 이러니 종국수망에 이주위성(以周爲姓)하고 당장종시(唐莊宗時)에 유한림학사휘황(有翰林學士諱璜)께서 오계지란(五季之亂)을 피하여 동국으로 즉 신라(新羅) 오십이(五十)대 효공왕(孝恭王) 십일(十一)년 서기 구백칠(九白七)년에 오시어 교남(嶠南)땅 초계부(草溪府) 현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草溪面)에 정착 후손들이 휘황(諱璜)을 시조로 하고 본관을 초계(草溪)로 위관(爲貫)하게 되었다. 그 후 그의 아들 흥인(興寅)이 신라 효공왕(孝恭王)때 집사성(執事省) 대사(大舍)에 올랐으며 시중(侍中)을 거쳐 아간(阿干)에 이르러 고려 때 보문각 대제학(寶文閣 大提學)을 지낸 손자 빈(斌)과 함께 가문을 중흥(中興)시켰다. 육(六)세 세후(世候)가 고려 선종(宣宗)때 황금탑(黃金塔)과 국청사(國淸寺)를 창건(創建)하고 금자광록대부예부상서(金紫光祿大夫禮部尙書)를 지내 명성을 날렸으며 그의 아들 지(砥)와 절의 형제 후손에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되어 가문의 융성을 누렸다. 조선조에 와서는 언방(彦邦) 문과은자광록대부전법판서정주군(文科銀紫光綠大夫典法判書定州君)에 올랐고 희(禧) 자헌대부공조판서(資憲大夫工曹判書) 희사헌부감찰겸돈영부사(熙司憲府監察兼敦寧府事) 세흥(世興) 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증가선대부호조참판금성군 공주판관(通政大夫僉知中樞府事贈嘉善大夫戶曹參判錦城君 公州判官)을 역임한 명흠(命欽) 절충장군첨지중추부사(折衝將軍僉知中樞府事)를 지내신 몽득(夢得) 공조참의(工曹參議)를 지내신 경손(敬孫) 통훈대부한성판관(通訓大夫漢城判官)을 지내신 의손(義孫) 등이 역대 중요인물이시다. 십일(十一) 세휘겸지손도은공유지후(諱謙之孫陶隱公瑜之后) 상주계(尙州系) 십이(十二)세휘사옹지후(諱士雍之后) 삼계계(森溪系) 십이(十二) 세휘영찬지후(諱英贊之后) 함안계(咸安系) 십삼(十三)세휘영지후(諱瑛之后) 장흥계(長興系) 십삼(十三) 세휘서지후(諱瑞之后) 안의계(安義系)가 되였고 초계(草溪)는 시조학사공휘황(始祖學士公諱璜)에서 현재(現在)까지 계승해오고있다. 오늘날 초계주씨(草溪周氏)는 삼파(三派) 옥천(沃川), 증평(曾坪), 목천(木川) 派가 있고, 沃川파에는 옥천, 이원, 청양 삼척, 종중이 있고, 증평파(曾坪派)에는 목천 신계 증평 청안 종중이 있고, 목천파(木川派)에는 목천 보은 종중이있다. 전체삼파구종중(全体三派九宗中)으로 편성되어있다. 한말(韓末)과 현대를 잇는 격동기에 사회 각계로 진출한 많은 후손들이 충절의 전통을 이어 눈부신 활약으로 종문의 명예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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