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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양홍씨 조형물 및 유래문

    조형물번호 41
    작품명 화합(和合)
    조각가 홍성도
    본관 남양
    성씨 홍씨
    종친회연락처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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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유례

    ▸ 작품설명

    4개의 기둥은 4대왕조(王朝)인 고구려, 신라, 고려, 조선을 뜻하며 파도치는 원형은 천년풍파 속에서 삼한갑족(三韓甲族)의 영화를 이룬 덕성(德性)과 화합(和合)을 상징하고 중앙의 청동 원추형은 항상 역사의 중심에서 하늘을 향하여 치솟는 남양홍씨의 기상을 담고 있다.


    ▸ 남양홍씨 유래

    남양홍씨(南陽洪氏)의 선(先)시조 당학사공 홍천하(洪天河)께서는 고구려 영유왕의 초청으로 이 나라의 문물을 깨우치기 위해 당나라에서 오셨다가 그 후 정착하신 곳이 당성(唐城) 현 경기도 화성군 서신면 상안리 (사적217호)이니 때는 삼국 통일 직전이다. 당성은 당나라와의 교통의 요지로 삼국이 서로 탐하여 다투던 곳인지라 공께서는 환난을 벗어나 잠시 지리산 동쪽 덕산 땅으로 옮기셨다. 이 때 신라조정 에서 공의 큰덕을 기려 덕산촌주를 봉하고 국사(國師)로 예우하였으며 그 후 당성을 다시 쌓고 공을 당성백(唐城伯)으로 봉함에 대대로 이를 이어 내려오니 당성홍씨는 신라귀족의 반열에 서서 이 땅의 문물을 깨우치며 풍속을 다스리는 지도계급으로 존경을 받아왔다. 이후 고려가 개국할 때 시조 태사공 홍은열(洪殷悅)께서는 고려 태조를 도와서 개국공신 태사(太師)가 되시었다. 공의 5대손 충평공 관(灌)은 고려 제1의 충신이자 명필로써 보문각 태학사로 경학을 강론하신 탁월한 철학자이시다. 다시 그 5대손 광정공 규(奎)께서는 무신들의 횡포를 제압하고 서울을 강화에서 개성으로 옮겨 고려의 왕권을 다시 세운 공신이며 그 종형 충정공 자번(子蕃)께서는 수상을 여러차례 역임하면서 원(元)의 압정을 막아내려 노력하시다가 끝내는 원나라의 연경에서 순절하신 충신이시다. 광정공은 두 따님(충선왕비, 충숙왕비)의 국혼으로 남양부원군(南陽府院君)에 봉해지고 익주(당성)을 남양부로 승격, 공의 식읍(食邑)으로 삼으니 이때부터 관향이 남양홍씨가 되었다. 이후 고려왕실과의 혈연관계 때문에 조선조가 들어설 때 잠시 큰 수난을 당한 바도 있다. 그러나 이 태조가 큰 뜻을 이룬 후에는 남양홍씨 가문을 회유하기 위하여 수교(受敎)로서 태사공의 후손은 누구나 다 병역과 부역을 면제하고 관노나 천한일에 부릴수 없도록 엄한 명을 내렸으니 이는 그 후, 역대 조정에서 추인한 바다. 조선조에서만도 남양홍문에서는 무려300여명의 대과 급제자와 10여명의 상신, 수많은 재상과 학자, 충의절사가 배출되어 자랑스런 문벌이 되었으니 일컬어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 한다. 이처럼 삼국시대로부터 고려조, 조선조에 이르는 동안 항상 역사의 주역으로 예를 존중하며 인류의 도리를 세우고 풍속을 바로잡아 질서를 다듬는 선비정신에 투철하였던 선조들의 유훈을 이어받아 우리 후손들은 언제나 확고한 소명(召命) 의식으로 나라와 가정을 충실히 가꾸어 보람차고 밝은 사회의 일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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